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6.25 전쟁/대체역사 (문단 편집) == [[6.25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 만일 6.25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분단이 70년 넘게 지속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동서독에 비해서는 김일성이 집권하는 한 갈등이 심했을 것이다. 6.25 전쟁 이전의 남북은 대치가 있었지만, 적대 관계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미 김일성에 의해 탈북을 막는 등의 조치가 북한에서 내려지고 있었고 거센 숙청의 바람이 불었기에 그가 집권하는 한 동서독과 같은 교류는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전쟁 전 북한의 감시원을 피해서 황해도 해주를 거쳐 탈북을 한 것이다. 아예 친척 방문도 북한에서 못하게 막았다고 보면 된다. [[https://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170821/85904875/1|#]] 북한에서도 해방정국에는 시위도 있었지만 사람들을 강제로 조직에 가입시켜 감시하여 이런 것을 못하게 된 것이다. [[https://www.rfa.org/korean/weekly_program/missing_you/pyunganbukdo_younbyun_hometown-20071009.html|#]] 한국에서도 기독교계가 반공 성향이 강한 이유가 저때의 숙청 트라우마를 가진 교인들이 월남하여 한국 기독교계의 세를 확장시킨 이유도 있다. [[제주 4.3 사건]]으로 악명 높은 극우단체 [[서북청년단]]은 6.25 전쟁 이전의 경험으로 탄생한 복수귀라고도 할 수 있다. 전쟁 전에는 남북간 서신 유통 창구가 있었지만 북한에서 그 편지를 중간에 아예 바꿔버린다는 소문도 있었다고 한다. [[http://dongne.donga.com/2013/05/10/d-story%E2%85%A1-3%C2%B78%EC%9A%B0%ED%8E%B8%EB%AC%BC2-6%C2%B725%EA%B9%8C%EC%A7%80-%EA%B3%84%EC%86%8D%EB%90%9C-%EC%9A%B0%ED%8E%B8-2/|#]] 북한의 경우 일제가 남겨둔 산업시설이 파괴되지 않고 그대로 남겨졌을 것이므로 중국과 소련의 지원에 힘입어 경제발전이 더욱 진전되어 1980년대까지는 북한이 더 잘살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남한도 교육열이 강하고 체제 경쟁을 위해서 미국의 지원은 다소 덜 받을지라도 10~20년 정도 늦게라도 경제성장은 이룩했을 가능성이 높다. 대한민국이 그리스, 튀르키예와 같은 입장을 취할 수 있다는 입장이 국제사회에 통용된다면 현재 못지 않게 발전할 수가 있다. [[김일성]]은 권력에 대한 야욕이 대단한 인물인지라 상당히 권력을 얻기 위한 행동이 빠르고 어떠한 수단도 가리지 않는 인물이었다. [[박헌영]]은 이미 김일성에 의해 권력을 잃어가는 와중에 자신의 세력을 유지하고자 전쟁에 의견을 제시한 것이다. 약간의 학력이 있는 사람들은 북한 정부에 협조하도록 압력을 받았고, 이런 압력을 주는 사람에게는 높은 대가를 주었다. 아예 머슴 같은 낮은 사람을 골라 출세시켜 더 열성적으로 충성하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카인의 후예]]》 같은 소설을 보면 사람이 권력 앞에 급격히 타락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다만 김일성의 거센 탄압을 막기 위해 남한과 연계한 테러 시도가 생길 수도 있어 심하게는 [[8월 종파 사건]] 즈음에 남한과 연계한 세력에 의해 김일성이 숙청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우익 세력에게 김일성은 크나큰 원한을 산 인물이었기에 남한으로 피신한 사람들이 북한 정계에 관여하고자 할 가능성도 있다. 해방정국에는 [[김일성]]도 [[백의사]]의 테러를 받았고, [[현준혁]] 같은 북한의 정치인은 아예 암살당했다.[* 이설로는 김일성이 스스로 좌파 진영에서 주도권을 잃을 것을 우려하여 여러 진영을 아우르는 명망이 있던 그를 소련에 협조하지 않는 인물이라고 설득시켜 소련의 협조로 그를 암살시키고 그 책임을 우파의 탓으로 돌리는 공작을 한 것이라고도 한다.] 김일성이 실각한다면 그 이후에 동서독과 같은 교류가 가능해지고, 심하게는 합의하의 오스트리아식 통일, 아니면 소련이 붕괴될 즈음 독일식 통일이 가능할 지도 모른다. 통일이 되지 못하더라도 외세에 의해 나뉜 [[루마니아]] - [[몰도바]] 관계와 비슷하게 정세가 흘러가고, 나중의 세대는 현재의 상황과 비교하면 경제적 부담이 현저히 적고 교류도 훨씬 활발한 나머지 북한과의 이질감도 적어 중국과 일본의 압력을 두려워하여 통일이 추진될 수도 있다. 한국과 달리 저 두 나라는 젊은 세대가 교류가 더 활발하여 통일을 찬성한다. 그러나 김일성이 [[엔베르 호자]]식으로 버티다 3대 세습을 할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국제적으로 볼 때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중공군을 한반도로 파병하지 않았으니 중국의 계획대로 대만으로 파천한 중화민국을 공격하여 중화인민공화국이 완전히 중국을 통일하여 지금의 양안 관계가 없었을 지도 모르며 현재 미국의 대중 전략이 많이 수정되었을 것이다. 일본은 6.25 전쟁으로 인한 전쟁특수를 누리지 못해 경제부흥이 늦춰졌을 것이며, 반공 명분이 다소 약해져 현재의 자민당 1당 우위인 일본 정치 환경이 자민당의 보수계열 정당과 좌익 계열의 진보 정당이 대립하는 양당제 체제로 변했을 지도 모른다. 또한 일본의 주권 회복을 규정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과 미일동맹의 근간이 되는 [[미일안전보장조약]] 체결도 미뤄졌을 것이다. 또한 냉전의 시작점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이 6.25 전쟁에서 [[베트남 전쟁]]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각주]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6.25 전쟁, version=2831, paragraph=9)] [[분류:6.25 전쟁]][[분류:대체역사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